무엇보다 놀랐던건... 일단 제목부터가 월요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묻고 있으니,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은 추리와 진상파악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메인 플롯이 시작되자마자 '우린 다 들통나버린거야!' 하고 공개되고는 쌍둥이들이 막 픽픽 죽어나는 것이다...! (ㅠㅠ) 아주 짧은 사이 일곱 쌍둥이 각각의 캐릭터성들이 너무나 잘 어필되었기 때문인지 하나하나 정이 쌓여버려 아이들이 죽을때마다 유독 마음이 아팠다. 아니 정말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보통 영화들에서 캐릭터들이 이렇게 조연마냥 죽어가는건 아무렇지도 않아야 정상인데... 일곱 쌍둥이는 곧 하나기 때문에, 스크린 타임 얼마 채우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들마저도 조연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또다른 반전 요소에 놀랐다. 먼데이가 쌍둥이를 배고 있었어. ㅠㅠ 살아남은 아이들이라도 꼬옥 행복해야해 얘들아...
또 놀랐던 요소는... 일곱 쌍둥이의 배역을 전부 홀로 소화해낸 배우 누미 라파스의 이야기다. 영화 감상이 끝나자마자 몇가지 인터뷰와 기사들을 읽어보았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나보다. 아침에는 하나의 씬을 찍고, 그 하룻동안 그 씬에 대한 몇 번의 각기 다른 반응 씬을 찍어야 했었다고. 다섯 달동안 일곱 명의 자신에게 붙잡혀 배우 본인의 자아는 사라져버린것만 같았다고 하며, 영화 촬영이 끝나고서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때까지 적어도 삼주가 걸렸다고... ㄷㄷ 그럼에도 그런 투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누미는 완벽하게 일곱 배역들을 소화해내었다. 일곱 쌍둥이 전부 매력이 터졌고 나는 이 배우의 팬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다 똑같이 생긴 일곱 쌍둥이들인데도 유독 써스데이에게 (처음부터!) 애착이 갔던걸 보면 난 역시 숏컷여성이 좋은 것 같다. 써스데이 평생 행복해야한다........
연기들이 다들 조금씩 어색했다거나, 회사 임원들을 너무 대놓고 악의 조직처럼 연출했다거나, 소소한 영화적 요소들이 걸려 시청 중 비판적인 말들을 하니 옆에서 함께 시청하고 계셨던 엄마께서 그러셨다. 이 영화는 아마 영화로서의 목적보다는 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역사 속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기억해달라는 뜻으로 제작한 영화에 가까울 것이라고. 그렇게 보니 영화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비리와 죽음은 정말이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가깝다는걸 느꼈다. 우리 가족도 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된 살균제를 사용했었다. 나는 어렸을 적 천식을 앓았었고...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우리 가족도 영화에 표현된 가족들과 비슷한 경험을 겪었으리란 사실이 무섭고 또 그걸 버텨낸 타 가족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아프게 전달되었다. 더불어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무력함은 아직까지도 느껴진다. 드디어 이겨냈어, 와도 같은 승리의 엔딩과 함께 기업의 사람들은 감옥으로 가게 되었지만, 크레딧이 올라오기 이전, 몇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도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다시금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야 비로소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세월호 참사와 비교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언제나 수련회가 향하던 기독교 청소년 수련원이 아닌, <우양 기도원>. 그곳은 새천년양지교의 교리가 새를 키우는 터전이었다.
캐릭터
덩무님의 반신이에용♡
이름 : 문소월
나이 : 17
성별: 퀘스쳐너리
키: 156cm / 표준
성격: 자아실종 · 극수동성 · 무골호인
양아치들이 득시글한 똥통고에서 자발적 따까리 포지션을 맡고있는 찐따아이
언제나 수동적인 캐릭터를 커뮤에 내는 데에는 조심성이 없잖아 있는데... 아마 이곳의 캐릭터들은 전부 꽤나 능동적일테니까? 라는 생각으로ㅋ 남들에게 팍팍 휘둘리는 러닝을 하겠다는 러닝if와 함께 투척해넣은 아이... 인데? 러닝 이틀차만에 세뇌당해버려 트롤의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가족 단위 / 친구 단위 다각적 가스라이팅으로 조형된 성격으로 인해... 오로지 남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아이였으며
성별도... 자신을 종종 남자아이 취급하는 가족 때문에 대충 퀘츠셔너리라고 생각할 뿐. 이렇게까지 속이 텅텅 빈 아이를 구상한건 처음이었는데... 딱하나 '너 때문에'라는 구절에만 발작적으로 싫어하느라 (비설비설) 세뇌 풀리고서도 자기변호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에게 사과도 못하구 아주 엉망이었음.
오늘 디자인 수업 도중 교수님께서 디자인은 밀어두고 이 단어에 대한 강의를 하셨다. Integrity! 한글로는 어째 제대로 번역할 방도를 찾을수가 없다... 청렴함? 온전함? 완전함? 사실 참 추상적인 단어다.
교수님은 이걸 대충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라 해석하셨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사회와 문화가 강제하는 바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용기를 가지는 것. 교수님은 약학을 공부하시다가 미술 쪽으로 길을 틀어버린 개인사가 있으셔 더욱 이 단어에 대한 애착을 가지신 듯 보였다. 그걸 들으며 기분이 참 묘해지더라. 분명 일정량의 합의점을 찾아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정말 하고싶은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판타지같은 말들은 꼭 성공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기에, 너무 달콤하다... 얼마전 인터뷰했던 종민씨도 이런 길만을 걸어오셨기에 멋져 보였는걸.
...그제 나는 첫 인턴십에 합격했다! 그런데 그 후로 마냥 기쁘지만은 못 하고 되려 더욱 심란해지기만 하더라. 나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있는 일을 하는 팀이라.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어쩌다보니 너무나 큰 기회다, 분명히 과분하다. 주변의 모두가 이건 잡아야 한다고 한다.
배우고싶었던 것들에 드디어 시간을 마구 쏟을 생각이었던 여름이 또다시 어긋나는 일들로 빡빡 채워지게 되었다. 겨우겨우 내가 바라는걸 알게 되었고, 그걸 향해 지금부터 걸어나가리라 다짐하며 기뻐하던게 고작 몇 달 전인데.
뭐랄까... 굴복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의 integrity에게 또한번 죄를 짓는 기분. ㅠㅠ
슬펐던 것 같다. 이렇게 크나큰 기회에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상태라는게. 초심을 되찾고 싶다. 작고 작은 기회들과 경험들에서도 배울것을 찾고,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최근에는 '나의 길'을 조금이나마 찾았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뻐하며 동시에 또한번 그 틀에 나를 가둬버린건 아닐까 싶다.
"마지막 기회다. 10일. 그 안에 쓸만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 하면 너희는 죄다 모가지야!!"
캐릭터
이름 : 롤라 헤레라
나이 : 29
성별: 여
키: 158cm / 48kg
성격: 자기애 · 철면피 · 배타적
직업: 켐트레일 홍보언론부서 사원이자 인터넷 셀럽
롤라레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같은 양지의 미디어부터 음지의 여러 사이트들까지 섭렵해 알 사람은 아는 이중적 유명세를 지녔다. 어그로성 컨텐츠, 자극적 언어와 물질만능주의적 이미지, 자잘한 논란거리들로 이루어진 비호감 마케팅으로 인해 악명이라 불리울 명성이 높으나 효과적인 동정팔이와 반사회적 이미지 각인, 철저하게 숨겨둔 일부 사생활과 여러모로 부풀려진 뜬소문들을 통한 신비주의적 분위기 등등을 통해 두터운 팬층또한 유지되고 있어 수익도 짭짤하고 영향력도 은근한 것은 사실이다. 대중 관리에 탁월하며 그만큼 가면이 두꺼우나, 과거 연인에게서 청력을 잃은 이후로 남에게 내보이는 것은 그 뿐이다.
지무비의 소개만 보고 바로 감상한지라 다들 잔인하다고 할때 처벌적, 폭력적으로 잔인한줄 알고 봤는데... 심적으로 잔인하더라...
마음 아픈 사랑 이야기에 더불어 공산당의 행보를 이런 매체로 현실감 있게 접한건 거의 처음이라 (관련 주제의 픽션 영상물을 보는게 처음인듯?) 여운이 길게 남았다. 더불어 장국영의 작품을 보는것도 처음이었는데, 왜 사람들이 장국영 장국영 하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온몸으로 발산하는 매력과 처연함에 정말 순식간에 빨려들어갔다 .. ....................
흥행이 그렇게 좋지 않아 개봉한지 고작 넉 달이 되었는데도 근처의 영화관들에서는 상영이 끝나버린 영화. 그럼에도 한시간을 달려 이걸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가 작품을 감상했다. 이 영화는 내게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퀀스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큰 무대에서 처음으로 연주해보았던 곡이었으며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나의 심장을 벅차오르게 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 영화를 보고 연주를 했었어야 했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61년도 영화의 리메이크다. 1961년도 영화는 그 당시의 뮤지컬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그 뮤지컬은 온 세상의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내용의 바탕이 역사적으로 두터운 만큼,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인상이 굳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후반부로 갈 수록 인물들은 평면적이게 느껴지고, 감정선은 격하고, 전개는 막장드라마식으로 극단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구시대적이라 부르기에는 옛 문학의 매력을 듬뿍 담아낸 스토리라인이니 나는 이 영화에 대한 혹평들을 'reminiscence'라는 한 단어로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다. 현대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무조건적으로 현대적인 재해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끝내주게 아름답다. 이래서 내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해, 라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작품성.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동작 하나 하나가 예술적이고, 견고하게 짜여진 코레오그래피는 감탄스럽다. 스타일링과 색만으로 완벽하게 제트파와 샤크파를 구분짓는 선택은 탁월했다.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 뉴욕과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은 라인업 아깝지 않게 너무 멋져서 가끔씩은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ㅠㅠ흐아앙... ... 물론 이건 과장이다. 스크린에는 계속해서 집중하고 있었다. 연기자들의 춤선도 놓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독 중반의 곡 <America>에서 아니타와 여자들, 그리고 베르나르도와 남자들이 주고받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 아니타의 연기자 아리아나 데보스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던데 정말 그럴만했던 것 같다... 이렇게 임팩트 있게 눈에 들어온 조연은 간만이었다. 또한 그 곡의 주제에 개인적으로 깊이 통감이 되었던 것도 같다. 물론 슬럼가라는 배경과 편견과 차별이 난무하는 굉장히 극단적인 조건들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푸에르토 리코 사람들의 심경은 나의 상황과 분명 깊이가 다르다. 하지만 이 곡에서 남자들이 대변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여자들이 대변한 이곳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내 안에도 분명 양극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와 닿았다. 정말이지 이민의 어려움은 이야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듯 하다. 물론 이 영화가 시사하려 한 메시지는 분명 그 뿐만이 아니나.
...
더 주절거리고 싶지만 피곤해졌다..
앓이 하나만 보고가주세요
Riff라는 앙큼한 상큼이가 나오는데 영화 후반부 내내 이친구때문에 나혼자서 가슴이찢어졌음... 그렇게...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아니 왜 비중이 크지 않지?? 안톤 이 나븐새기 사랑이중요하다고는하지만... 아.. 아니야... 사랑은중요하지... 하지만여러분 Riff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기억해주세요... 많이 삐뚤어지고 바보같은아이지만... .........소중해요
본걸 또보고 또보고 또보며 곱씹고 되새김질하는걸 가장 좋아하는 나기에 이 영화를 본 것도 이번이 아마... 음... 열번째가 넘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독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요즘 또 이렇게 간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다. 절대로 내 기억력이 나빠서 열번 본 영화의 줄거리도 까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를 보자면 어쩔 수 없이 어이가 없다. 시네마토그래피는 촌스럽고 (2009년도 발리우드 영환데 당연하긴 하다), 저 시대 인도 명문대들이 정말로 그랬을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지만, 대학교와 교수님의 설정은 극단적이고 주인공들은 제목답게 얼간이들이다. 현실성을 따지면 뒷목을 잡을수밖에 없게 되는 플롯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 바라보자면 이 영화는 풍자로 똘똘 뭉쳐 있다. 모든 캐릭터들이 현실에 있을법한 진로적 문제를 직면하고 있으며, 악인으로서 등장하는 몇 캐릭터들(바이러스, 차투르)이야말로 더욱더 현실적인 현대 교육시스템의 폐혜를 사상으로서 대변한다. 비현실적이라 보여지는 인물은 단 하나, 모든 등장인물들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주인공, 란초 (*스포일러*) 뿐. 그러나 알고 있었는가... 그는 현실인물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이다! 소남 왕축(sonam wangchuk), 인도의 엔지니어이자 교육 개혁가. 인공 빙하(Ice Stupa) 등의 에코프랜들리 엔지니어링으로 유명하고, 라다크 학생 교육 문화 운동 (SECMOL)을 창립하였다. SECMOL 캠펀스는 태양 에너지로 운영되며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의 체제로서 굳어버린 현실 속에서 그저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캐릭터의 사상을 정말로 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너무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우스꽝스러운 만큼 마음 아프게 와닿는다.
솔직히 와닿는다 하더라도 나에게 당장의 변화는 없다. 나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미래를 걱정하고 성공을 걱정한다. 지금 대학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내가 배우고파 배우는게 단 한개도 없다! 너무 늦은 전과로 인해 6전공을 해야 하는 바람에 수업 바깥으로 내가 원하는걸 독학할 시간도 겨우 짜내야 있을까 말까한 상태. 나는 지금 멈춰있는걸까?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로 가는 데에 연료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내가 하고픈 것은 뭐지? 나는 이 세상에 어떠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나 있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들로 시끄럽던 어젯밤의 머릿속이 떠오른다. 그에 대한 해답을 명확하게 내리기에는 내게 란초같은 현자가 없고, 라주나 파르한처럼 하고싶은 바가 명확하지도 않다. 인생은 발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내게 분명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이 영화의 메세지들이 내 선택들에 어느정도의 무게를 싣게 되지 않을까.
11월달 일기를 보자면 오래전에 좋아요를 눌러두었던 유튜브 동영상을 언급하는데, 그 유튜버분이셨다. 간단히 말해 내게 새로 생긴 꿈을 키워주신 분이시다. 사실 내가 이렇게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며 행복해하기가 무안하게도 그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을 엄청난 천재라고 생각하시지도 않고,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신다고. 실리콘 밸리에는 날고 기는 사람들이 애초에 잔뜩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이 더욱 달가웠다. 내가 그를 롤모델로서 보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성공을 일궈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걸어왔던 길이 무엇 하나 잃는걸 걱정하지 않는 대담함을 지녔기 때문이고, 그가 만드는 것들에는 고객들과 대중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현명함보다 자신의 솔직한 신념과 흥미와 사랑과 정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고서는 너무 신이 나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15분을 달렸다. (뭥미) 지금은 이 신남을 외적으로 발산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에... ㅋ 내가 그와 대화를 했다는 사실도 기뻤고, 그에게서 응원을 받았다는 것도 기뻤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일궈낸 기회를 통해 이런 기쁜 경험을 쟁취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최근 들어 정말 이것저것 많이 봤는데 (퀸즈갬빗도 세번째 정주행을 끝냈고, 블랙미러의 두번째 에피소드도 흥미로웠고, 엔칸토도 봤고, 아케인도 정주행을 끝냈고...) 적는게 귀찮아서 업데이트를 안 했다. 하지만 단순 기록용으로라도 넣어두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시간 들여 글을 쓰지 못해도, 적어도 기억할 수 있게...
이 작품은 소중한 연이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보면서 또 (또) 울었다, 한 다섯 번 정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봤기 때문에 더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트레일러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영상이 시작되었을때, 편지를 읽는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여기서 이미 윤희에게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 편지에는 너무나 깊은 진심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리고 엔딩, 윤희의 편지를 읽는 나레이션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오늘 동생이 웃기다며 이걸 보여줬다. 같이 웃은 뒤 조금 생각하다 덧붙였다. 정말인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 말이다.
이번 해, 수많은 변화들을 겪고 깨달음을 얻으며 주변인들에게 농담 삼아 자주 말했다. 나는 지금껏 생각이란걸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과거의 내게도 분명 고뇌와 고통이 있었고 사랑과 즐거움이 있었지만 어쩐지 그게 정말 멀게 느껴진다. 꼭 남의 것이었던 것처럼. 나는 기억력이 원체 좋지 않다는 이유를 자주 댔었지만 그것 뿐은 아닌 것 같다.
요즈음 삶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배워가는 중이다. 얼마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지, 얼마나 내 좆대로 살아도 되는지, 그런 것들. 분명 당연한 것들이고 나는 항상 알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새삼스럽게도 지금은.. '더' 배우고 있다. 이게 뭔 뜻이냐?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게 정말 새삼스럽게시리 와닿는다.
나에 대해서도 배워가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 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는지, 그런 것들. 좋아하고 싶은 것들, 싫어하고 싶은 것들도.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건 정말 새삼스럽다는걸 안다. 그런데도 말이야.
어이없어 중2병인가
누구에게나 이런 때는 있나보다. 나는 좀 많이 늦었던 것 같다. 동생은 8학년때 통달했다고(ㅋㅋ) 하더라. 누군가는 날 때부터 그저 그러한 삶을 살았겠지.
어쨌든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솔직히 여러모로 조급함도, 열등감도, 스트레스도 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게 너무 달가워서 하루 하루가 재밌다. 겁쟁이 패달의 마나미가 된 기분.와타시... 이키테루 !!
삶을 이루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하는 것들, 겪는 것들보다 우리가 느끼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인게 아닐까.
정말 긴 시간 스스로를 누군가의 이상에 끼워맞추려 노력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분명 존중해줄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에 갇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릴 여유마저 본인에게 주지 않은 것 같다. 눈 딱 감고 열심히 하다보면 좋아하게 되고, 잘 하게 되겠지 싶은 생각으로 굴러갔다. 내 모토는 '안 되면 되게 만든다' 였거든. 다만 그 이론으로 성공할 수 있기에는 내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니 손을 뻗고픈 마음도 들지 않는 것이지. 너무 늦게 깨달았기에 그때부터는 용기의 문제였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이른 것이다' 등의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한 문구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을 전부 놓아버리고 새로운 방향성을 추구한다는 생각부터가 두려웠다. 동시에 그러한 생각을 한번 시작하니 지금 하고있는 것들이 더욱 무용하게 느껴져 학업도 곤두박질치고, 집중력도 곤두박질치고, 당장의 내 상태를 표현할 단어가 방황 뿐일 지경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글을 읽고 많은 영상들을 보았다. 이만치 진로와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남의 이상을 자신의 이상으로 만들었던 선택의 유일한 장점은 '무엇이 나은가'에 대한 고민을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친한 언니의 경험담과 조언을 들었고, 이영지의 강연을 보았다. 나의 마음가짐에 가장 큰 변화를 남긴건 아마 이 두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다 팀에 영입되어 대회에서 함께하게 된 친구의 '너 이거 하면 잘할 것 같다' 한마디와 옛날 옛적 좋아요를 눌러 두었던 어느 영상의 유튜버는 불씨가 되어 주었다.
지금은 꿈이 생긴지 생긴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하고싶다, 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열망이 여전히도 생소하다. 서치를 하면 할수록 배워야 할 것들 알아야 할 것들이 아득하게 앞으로 펼쳐진다. (리터럴리.. 아득하다) 그럼에도 흥분할 정도로 기쁜 마음이 자꾸만 드는 것이, 정답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답 같은게 있겠냐마는. 적어도 나 자신을 위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만큼은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어진다.
나의 행복은 도피성이다. 온 일생 나의 긍정성이 나의 강점이라 생각해왔으나 더이상 도망칠 구석이 없어시자 그 긍정성이 내게 유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분명 나를 손쉽게 진정시켜줄 모든 것들을 부러 내려두었다. 음악을 끄고 군것질거리를 놓고 펜타블렛의 코드를 뽑고, 그냥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음악 없이 고요하게 생각만 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내게 조금 더 필요했을 순간이었겠으나 나는 언제나 조금의 우울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이 늦게 찾아오게 된 현타와 현실자각의 시간이었다. 또는 휴식이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 과정은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울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언제나 행복만 할 수는 없겠느냐고, 왜 사람들이 우울하고, 걱정하고, 자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예전의 내가 떠올라 괜히 자신이 우스워졌다. 마냥 행복한 것은 그저 미성숙한 모습으로서 비춰지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었었다. 그런 식으로 맹목적인 행복이란 나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 눌러왔던 많은 아픔들과 외면해왔던 책임들은 전부 해결되지 않은 과제처럼 남더라.
나는 여전히, 행복이 미성숙의 좌표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우울을 겪는 지금도 딱히 성숙했다는 감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삶을 배워간다는 느낌은 조금 드는 것 같다.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안다. 우울을 극복했을 그 때는 회피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순수하게 스스로 일구어낸 행복일 것을 안다.
최근 일터에서 자기소개 글 적는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모가디슈라고 적었다. 액션적인, 연출적인 요소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으나 이 영화가 표현한 전쟁(내란)의 무서움은 무엇보다도 현실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영화 시청 내내 나는 펑펑 울고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볼 때 내가 우는 것이야 한두번이 아니겠지만 (..) 이번에는 슬퍼서 혹은 감동적이어서 운 것이 아니다. 무서워서 울었다. 실제 세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들의 실상을 눈앞에서 보는것만 같았다.
슈퍼밴드 3 보다가... 김슬옹+변정호+김성현팀 Get Lucky를 심사위원들이 더티룹스에 비교하던데 거기서 짧게 나오는 클립에 그즉시 더룹에 빠졌다. 진짜 한곡한곡 명곡이 아닌게 없음... 베이스가 가지는 존재감도 좋고 싱어 목소리도 최고고 드럼의 기교는 말할것도 없고... 최애 밴드가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