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행복 2021. 10. 18. 07:49

 

나의 강점이었던 것들이 약점으로 보이기 시작해 우울이 찾아왔다.

 

나의 행복은 도피성이다. 온 일생 나의 긍정성이 나의 강점이라 생각해왔으나 더이상 도망칠 구석이 없어시자 그 긍정성이 내게 유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분명 나를 손쉽게 진정시켜줄 모든 것들을 부러 내려두었다. 음악을 끄고 군것질거리를 놓고 펜타블렛의 코드를 뽑고, 그냥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음악 없이 고요하게 생각만 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내게 조금 더 필요했을 순간이었겠으나 나는 언제나 조금의 우울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이 늦게 찾아오게 된 현타와 현실자각의 시간이었다. 또는 휴식이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 과정은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울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언제나 행복만 할 수는 없겠느냐고, 왜 사람들이 우울하고, 걱정하고, 자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예전의 내가 떠올라 괜히 자신이 우스워졌다. 마냥 행복한 것은 그저 미성숙한 모습으로서 비춰지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었었다. 그런 식으로 맹목적인 행복이란 나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 눌러왔던 많은 아픔들과 외면해왔던 책임들은 전부 해결되지 않은 과제처럼 남더라.

 

나는 여전히, 행복이 미성숙의 좌표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우울을 겪는 지금도 딱히 성숙했다는 감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삶을 배워간다는 느낌은 조금 드는 것 같다.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안다. 우울을 극복했을 그 때는 회피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순수하게 스스로 일구어낸 행복일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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