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트위터를 하며 가뜩이나 덜 읽던 책을 더 안 읽게 되었건만, 이번에는 트위터 때문에 이렇게 책 하나를 붙들고 며칠만에 완독까지 달렸다. '절대로 스포 없이 읽으세요, 줄거리도 리뷰도 보지 말고 읽으세요' 하는 꼭 티알 시나리오 안내트윗급 자극적인 신비주의 영업멘트에 홀려버리는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렇게 홀라당 넘어가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간만의 독서는 정말로 신선했다.

아래는 딱히 스포일러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쨋든 책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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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논하는 여러가지 과학적 사실들과 인물들의 이야기, 철학적 고민들 등을 떠나 나는 이 작가의 글 실력이 읽는 내내 너무나도 부러웠다. (정확히는 작가의 글이 한글로 번역된 글을 읽었으니, 작가의 글 실력과 번역가의 어휘에 함께 감탄한 것이겠으나 말이다.) 최근 들어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느끼며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생각들과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감정들이 많아졌다. 문제는 이게 통 무슨 생각인지, 무슨 감정인지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이 오묘함을 설명하는것조차 어렵다! 삶과 죽음, 외로움, 삶의 목적, 각종 밈들에 자주 등장하는 실존적 의미 따위의 갖은 장황한 개념들에 대해 깊게 고뇌해볼 필요성을 한번도 느끼지 않으며 마음 편히 살다가 갑자기 별의 별 생각들이 물밀듯 쓸려오는 날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그러한 추상적이고 까마득한... '것들' (감정이라고 생각이라고 칭하기에도 애매하다)을 유려하게 표현한, 적어도 표현하려고 애쓴 이 작가의 글은 내게 시원한 감각을 안겨줬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쾌감이 있었다. 룰루의 고민과 혼란과 방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혼돈'이라는 단어의 운용도! 아주 작은 우물 속에서 커왔던 나는 최근 들어 법과 규칙과 과학과 모럴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 세상에 대해 낙심하고 놀랄 때가 꽤 자주 있었는데, 그게 이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되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혼돈이다.

 

결국 그 혼돈 속에서 룰루가 찾아낸 빛은 사실 그닥 놀랍지 않았다. 혁신적이지도 않았고, 내게는 꽤나 당연한 개념이었다. 그 지점에서 김 빠지는 아쉬움을 느꼈다는 사람들의 리뷰 글들도 꽤 보였다. 하지만 이 부분이 김 빠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을 평가절하하기에 내게는 룰루가 그 당연함으로 이르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는 생각을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힘겹게 고금분투를 한다. 룰루는 광적으로 과거와 과학의 파편을 쫓으며 자신과 그것들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었다.

이런 과정은 정말 판타지와도 같은 것 같다. 정답도 퇴로도 없는 미로 속에서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 헤매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책이 적힌 방식이다. 과학서적이라 부르기에 이 책은 과학적 발전과 흐름에 지나치게 주관적인 의미부여를 한 감이 있고, 역사서적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정보가 많다. 조던의 전기라고 부르기에는 개인사가 너무 섞여있는 것 같고, 그렇다고 자서전이라 부르기에는 룰루 자신의 이야기도 아주 얕게만 녹여내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장르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에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이나 교훈, 혹은 과학적 지식들보다는 이 작가가 표현하는 생각의 방식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논픽션 장르의 책에 대한 새로운 매력이 솟아올랐다.

 

비슷한 책이 뭐가 있으려나. 논픽션 책들 중에서도 빨려들어가듯 읽게 된다며 유명한 책 하면 코스모스가 떠오른다. 아직 안 읽어봤으니 그걸 다음 책으로 잡아도 되겠다.

 

이 책을 지금 읽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잡았었다면 작가를 괴짜 취급했을 것 같다. '아니, 왜 이렇게 드라마틱해?' 하고 생각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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